본문 바로가기
일기

묵은 것들 털어내기

by SingerJ 2022. 1. 23.

오늘 부엌은 묵은 식재료들의 잔치였다.

오트밀 남은 부스러기를 묵은 식빵 위에 뿌려 아침에 먹을 토스트를 구웠고

냉동실에 언제부터 있었더라 기억도 안 나는 또띠야를 꺼내 피자를 구우니 세 판이 나왔다. 내일 가져갈 도시락으로 당첨. 피자에 올라간 토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 며칠 묵은 피망, 오늘도 안 먹으면 물러버릴 버섯, 시들기 시작한 시금치, 그그저께 만들어 먹고 남은- 하루만 더 묵히면 맛이 가버릴 것 같은- 볼로네제 소스 등이었다.

싹 난 감자도 다 구워버렸다. 2주 넘게 방치되어 있던 로즈마리 이파리도 털어 넣어서.

이로써 저녁에 닭다리와 함께 먹을 것도 해결되었다. 나열해 놓고 보니 마치 우리집엔 신선한 재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_-;ㅋ

보류해오던 결정도 내렸다. 조만간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신청하겠다. 지난번 병원 면담 이후, 한 석달 정도 기다려보고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지 뭐 라고 두리뭉실 결론을 내렸었는데 글쎄 그 석달 중 두 달을 그냥 흘려보내야 했지 뭔가 (왜 두 사람의 중요한 출장은 꼭 결정적 타이밍에 잡히는건지 누가 설명 좀... -,.-;) 이런 식으로 버린 시간이 지금까지 적어도 1/3은 되다보니 더이상 우연의 장난으로 웃어 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밍과 확률이 80%는 차지하는 사안에서 번번이 타이밍을 그냥 버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중간보스 헬렌에게 대강 귀띔을 해두었다. 앞으로는 꼭 필요치 않은 외부교육 같은건 대폭 줄이겠노라고. 시술이 꼭 필요한가 반문하던 남편도 슬슬 수긍하고.. 아니, 수긍단계를 넘어 쌍둥이 확률이 올라가겠다고 김칫국 마시고 있는 웃긴 시츄에이션. -_-;; 이 사람아 의술의 힘을 빈다고 누구나 다 성공하는게 아니여! 지금 꿈 크게 쌍둥이 기대 같은 걸 할 게 아니라 몇 번까지 해 볼 것인지, 그래서 과연 되긴 될 것인지 같은 걸 생각해야 맞는 것 같은데. 그리고 아직 덜 급한가 보구나 신께서 생각하시어 부정 탈까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하겠지만 으악 돈 아까비..

몇 주째 미뤄오던 내년 상반기 휴가 예약도 했다. 찍어뒀던 리조트를 예약하자마자 sold out 메세지가 떴다. 마지막 방이었나벼.. 지금 안 했더라면 또다시 그 리조트 비교 삼만리를 해야 했을걸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머리 아프다. 그러게 미리미리 좀 하자니까- 라고 신경질 섞인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에 반해 사메는 매번 그 막판결단의 스릴을 즐긴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던 추리소설도 드디어 읽었다. 매일매일 미루지 않고 바쁘게 산다고 사는데도 이렇게나 자잘한 묵은 것들이 많다는게 매번 놀랍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 7시의 단상  (3) 2022.01.23
낭만에 대하여  (4) 2022.01.23
가을 100미터 전  (0) 2022.01.23
잡동사니들의 근황  (1) 2022.01.23
용감한 낙하산 外  (4) 2022.01.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