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 나른한 햇빛샤워가 쏟아지고 창문 틈으로 청량한 가을공기가 들어온다. 요 앞 공터에는 주말마다 돌아오는 작은 장이 열렸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늑한 아침이라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안 마치 모네의 그림 '햇빛 속의 포플러' 속 여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오늘은 근교 농장의 호박축제 첫날이기도 하다. 날 한번 기막히게도 잘 골랐다 싶다. 농촌의 가을정취도 흠뻑 느끼고 호박도 두어 덩이 사오고 옥수수도 따와 구워 먹자고- 어제따라 의욕도 넘치게 호박축제 옥수수 같은 소리 하시던 그 의욕맨, 오늘 아주 제대로 아프다.
도대체 일년에 감기를 몇 번을 앓는건지 모르겠다. 가리는 거 없이 골고루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건 물론에, 술 담배를 하길 하나, 건강검진 결과도 나무랄 데가 없는데 축구 할때는 소도 때려잡을 기세다가도 왜 감기 따위엔 저리도 자주 굴복하는지 거 참 모를 노릇이다. 홍이장군이라도 먹여야 하나. -_- 회사에 감기 걸린 동료가 있어서, 트램 안에서 앞좌석 사람이 재채기를 해서 등- 그때마다 대는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가 내 화를 더 돋군다.
"아니 너는 면역기능이 없숴?? 주변에 아픈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재깍 덩달아 걸리는게 그게 정상이야?"
전날부터 조짐이 있었으면 일찍일찍 들어와 쉴 것이지 회사동료 이삿짐은 왜 날라준다고 인심까지 써놓고선 집에 와선 저 모냥인지.. 쯧쯧. 너무 화가 나서 아픈 사람한테 소리는 냅다 질렀는데 그래도 또 안됐으니깐 닭고기 수프라도 끓여준다. 에혀...내가 환자식 같은거나 만들려고 슬로우쿠커를 산 게 아닌디. ㅠㅠ
여자에게 있어 결혼의 좋은점은 뭘까나. 사랑하긴 해도 가족이 되어 같이 사는건 진심 고민되던... 과연 이게 내 인생의 옳은 선택일 지 수만번 자문해보고 결정한 일임에도 솔직히 나는 결혼의 좋은점을 여전히 모르겠다.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좋은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하는 방법 중 과연 결혼이 최선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랄까. 이 좋은 가을날에 감기로 앓아누운 곰 한마리를 키우는 과정이 결혼인가요 신이시여.. -.- 아니면 내가 아플때 울엄마가 끓여주시던 뽀얀 쌀죽과 간장+깨소금 종지를 이제 저 곰이 내게 차려주도록 하는 조련과정이 결혼이란 걸까요..
뭉근하게 끓고 있는 닭고기 수프. 진하게 우러나기를, 그래서 이거 한 그릇 뜨끈하게 먹고 얼른 일어나기를.. 아프면 꼴보기 싫긴 해도 항상 건강하게 내 옆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인간의 마음이란 복잡시럽고도 변덕스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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