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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복병은 있다 라면이나 사러 슬슬 나가 볼까 하여, 세수하고 크림을 바르는데 벌컥 방문이 열리더니 남자들이 우루루 들어왔다. 그렇게 놀라본 적 정팔이지 처음이었다. 심장 뚝 정지.. 그들의 정체는 소방관 아저씨. 화재알람이 울린다 싶었지만 또 저러다 말겠지, 무시했는데 이번엔 문제가 우리층 이었는지 방마다 순찰을 나선 것이었다. 얼마나 놀랬는지 말로는 다 못한다. 아, 벨이나 좀 누를 것이지!! 기척도 없이 우주복 남정네들이 들이닥쳤으니 월매 머리띠에 몸빼 입고 크림 뜨던 난 그저 입 딱 벌리고 크림통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어이구, 아가씨 놀랬나 보네! 요리 안 했지?" 요리는 무슨 요리예욧!! 지금 라면 사러 나간대니까.. -_-;; 범인은 옆방 중국 남학생들로 밝혀졌다. 하여간 만날 방문 열어놓고 기름 지글거릴.. 2021. 11. 1.
아스파라거스 리조또와 연어케잌 제철채소란 좋은 것이지.. 그러나 그게 아스파라거스라면? 독일생활을 막 시작했을 즈음 TV에 자주 나오던 Knorr 광고가 있었다. 오늘 저녁메뉴는 뭔가 뛰쳐나와서 보던 꼬맹이들이 아스파라거스를 보고는 대실망을 한다. "으윽...슈파겔..." (아스파라거스의 독일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엄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Knorr 홀랜다이즈 소스를 끼얹어주고, 꼬맹이들은 아스파라거스를 맛있게 먹는다. 그때만 해도 아스파라거스를 먹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 광고의 포인트를 이해할 수 없었더랬다. 영양가가 훌륭하지만 이 곳 아이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채소라는 것도, 알고보니 나 또한 이 채소를 안 좋아한다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 봄이 되면 어김없이 한번쯤은 먹게 되는 마력이 있는데, 순전히 심적만족 .. 2021. 11. 1.
봄날의 파스타 옷장 안이 왠지 휑해졌다 싶은건 착각이 아니었다. 금요일에 일찍 퇴근했던 사메가 우리 겨울자켓들을 다 세탁소에 보내버렸단다. 헐, 그러다 다시 추워지면 어쩌려고? 하려는데 새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사방에 꽃들은 또 얼마나 흐드러지고. 봄이 온 정도가 아니라 이미 흠씬 무르익었음을 또 이렇게 늦게사 깨닫는다. 일요일 점심엔 왜 특히 밀가루가 당기는건지 알 수 없다. 서울 우리집에서 일요일마다 국수, 라면, 수제비 등으로 점심을 먹던 습관이 남아서일까, 아님 일요일은 짜파게티 ^^ 라는 광고에 세뇌되어서일까. 우리집에서 제일 자주 해먹는 파스타는 해물파스타로, 그래서 해물믹스 두어 봉지 정도는 늘 냉동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참전에 사뒀다 잊고 있던 와인을 오늘 마셔보기로 했다. 찰랑이는 오묘한 금.. 2021. 11. 1.
비요일의 치즈 냄새 봄비스러운 비가 내린다. 1월보다 추운 2월이었는데 이제 좀 날이 풀리려나? 빼꼼 창문을 연 순간 얼음같은 공기가 쏜살같이 파고든다. 아직은 겨울인갑다.. 뜨끈한 수프와 치즈 잔뜩 들어간 음식이 당분간은 계속 어울리는. 말 나온 김에 오늘은 마카로니 앤 치즈를 먹기로 한다. 요즘 (또) 다이어트 한다고 샐러드를 자주 먹는데 날씨가 이러니 더더욱 먹기 싫은 것. 이런 날엔 떡만두국 아닌가요! 샐러드 따위가 웬 말인가. 어서 봄이 와야 상큼 아삭한 샐러드맛을 좀 즐기며 먹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 닭가슴살 구이는 우리집에서 제일 자주 해먹는 메뉴가 아닐까 싶다. 소스를 만들고 (올리브기름+ 발사믹 식초+ 다진 마늘+ 설탕+ 소금+ 후추+ 허브+ 머스터드) 발라 굽기까지 15분이면 넉넉하기 때문에. 자취 시.. 2021. 11. 1.
치킨을 기다리는 피클 오이를 어제 샀어야 했다. 피클 담그기 좋은 품종이 오랜만에 있었는데 그만 깜박 하고선.. 오늘 다시 갔더니 그새 동이 났다. 터키상점에서 비슷한 걸 골라오긴 했으나 왠지 미심쩍다. 어차피 주인공은 콜라비와 무가 될테니 오이는 쪼매만 넣어야겠다. 스물 일곱에 독일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식재료에 대한 나의 무지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원래 무식한데다 한국에서 못 보던 것들까지 더해지니 장 보러 가는건 일종의 탐험이었고, 기름, 식초, 곡물, 각종 향신료의 다양함 앞에서 날마다 동공지진이었다. 아니 내가 이런 걸 다 먹을 일이 있기는 할까? 싶은게. 지금은 집에서 쓰는 식초만도 대여섯 가지는 되는걸 보면 내 식생활도 그동안 조금은 변했나보다. 도시락에 곁들일 채소를 따로 조리하기 귀찮을때 .. 2021. 11. 1.
[Greece Santorini #3] 노을 지다 산토리니의 정수로 꼽히는 것은 이아 (Oia) 마을, 그 중에서도 석양이다. 혹자들이 세계 최고의 노을이라 감히 말한다는. 해질녘이 되자 모여드는 사람, 사람들. 타 들어가던 태양이 이윽고 에게해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고, 카메라 촬영모드를 'sunset' 으로 바꾸었다. 저거구나... 이 인파를 여기까지 불러 모은 놈의 정체가. 어디에서도 환호성은 터지지 않았다. 정적...고요. 어쩌면 저거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왕자가 마흔 몇 번 의자를 옮겨 가며 봤다던, 가슴 아린 그 노을이...저것인지도. 이 순간을 위해 넉넉히 남겨둔 메모리건만 선뜻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바보 같은 마음이여. 찍는 순간 저 모습은 내 눈을 떠나 그렇고 그런 노을풍경으로 기계 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 머리를 피해 몸은 이.. 2021. 11. 1.